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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12.23, 조회수 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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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향적봉 가는 길
작성자 정두효
내용 향적봉 가는 길 정두효

산위에 얹혀 있는 대피소는 바람이 휘감고 있었다. 어둠이 쌓여오자 대피소 외곽에 전등이 켜졌다. 9시의 소등은 밤을 길게 했다. 어떻게 이 밤을 보내나, 띄엄띄엄 흩어져 잠을 재촉한다. 새벽 5시, 웅성거림에 잠에서 깼다. 폭설이 내려 우리가 갇혔다는 것이다. 문을 열어 제쳤다. 펑펑 눈이 내린다.

8시에 향적봉을 향해 출발했다. 산행을 못할 만큼의 눈은 아니었다. 6시간을 걸어야 한다. 구름으로 무거운 하늘엔 눈발이 내린다. 1100m 고지의 산길, 마른 나무 가지들은 눈꽃을 피웠다. 산은 잔잔하고 고요했다. 언덕을 오르면 세찬 바람소리, 눈옷 입은 가지들의 흔들림만 있다. 순백의 단순함이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하얀 눈보라가 계곡으로 곤두박질 친다. 쭉 뻗은 능선, 나무들은 똑 같은 난쟁이다. 바람이 높이를 맞춰준 것이다. 가도 가도 이어지는 눈밭, 온 세상이 하얗다. 바람소리는 다른 세계를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시야는 50여 미터, 이 능선에 잎이 푸르고 야생초들로 덮이는 계절은 어떤 모습일까. 가을의 단풍은 참 아름다운 모습일 게다.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한다. 숨을 헐떡인다.
나무계단 로프에는 눈이 서리되어 매달려 있다. 계곡 조릿대는 눈을 뒤집어쓴체 떨고 있다. 눈보라가 얼굴을 때린다. 마주 오는 사람도 없다. 이 정도 고도엔 바람 잔잔한 날이 없을 듯하다. 밤이되면 세찬바람소리만 허공을 가를 것이다. 해발1320m 동엽령에 닿았다. 절반을 온 것 같다. 보온병 물은 따뜻했다. 컵라면으로 요기를 했다. 눈 쌓인 언덕엔 앉을 곳도 없다. 백암. 중봉을 지나야 향적봉에 가까이 갈수 있다.

눈 속에 묻힌 나무들은 이곳에서 태어나 한자리에 머문다. 나무들은 이 세상이 바람과 하늘과 별과 구름. 눈만 있는 것으로 알 것 같다. 그들이 접촉하는 세상은 이것밖에 없고 그렇게 살다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천년을 살다갔을 주목들은 하얀속살로 눈속에서 고고했다.
설경을 보는 대가는 컸다. 기대했던 캄캄한 하늘의 별은 볼 수 없었다. 달이 떠올랐다면 눈 덮인 산은 아름다웠을 것이다. 하지만 설경의 감동은 오래 남을 것이다. 덕유산 능선 위를 걷는 우리는 하나의 까만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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