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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무경(姜武景)

  •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설천면 두길리 973-1

소개

강무경(姜武景, 1878 ~ 1909) 강무경은 1878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서 태어났다. 키는 6척(尺)이 넘었고 몸무게가 140근 이 넘는 장사였다고 한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일제의 대한제국 병탄이 머지 않았음을 예감하고 비분강개하면서 국권회복의 뜻을 키웠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는 불가항력이라 판단하고 필묵상(筆墨商)을 하면서 뜻에 맞는 사람을 찾아 삼남(三南)을 돌아 다녔다.
전남 함평에 이르러 심남일(沈南一)을 알게 되었고, 결의형제를 맺고 함께 김율의진(金聿義陳)에 소속되어 일본군과 격전을 벌였다.
1907년 김율이 사망하자 심남일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그의 선봉장이 되었다.
그 이후 의병생활은 심남일과 일체가 되어 시종(始終)을 같이하게 되었다.
1908년 심남일을 전군장(前軍將)으로 하여 전라남도 강진면과 영암(靈巖)·장흥(長興)·함평(咸平)·보성(寶城), 전라북도 남원(南原) 등지에서 일본군과 수십 차례 교전을 벌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1909년에는 작전과 전술을 바꾸어 낮에는 산 속에서 전투준비를 하고 남평(南平)·영암·보성 등지에서 일본군을 야습하여 전공을 세웠다.
그 후 전남북지역 의병간의 연합전선을 구축하던 중 의병을 해산하라는 황제의 조칙을 접하고, 1909년 7월 21일 영암군 금마면 고인동에서 자진 해산하게 되었다.
의병 해산 후 강무경은 심남일과 함께 능주로 잠행하여 전에 전투지였던 풍치의 바위굴 안에서 신병을 치료하였다.
그러던 중 적병에게 발각되어 8월 26일 함께 체포되었고, 9월 2일 광주로 이송되었다가 12월 15일 대구 감옥소로 이감되었다.
이곳에는 의병장 박영근(朴永根)·오성술(吳成述)·전해산(全海山一名垂鏞)도 수감되어 있었다.
결국 이곳에서 교수형에214) 처해져 32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고, 현재 국립묘지 국가유공자 묘역 124호에 안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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